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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미터 다운 스킹


6천미터 다운 스킹
글:허긍열

위와 같이 제목을 붙여놓고 보니 좀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일요일,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재미나게 보내볼까 여기다가 연장 스킹 다운을 실행해보기로 했다.
즉 3800미터의 에귀디미디에서 발레브랑쉬를 타고 내려가다가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선인 헬브로너(3500미터)까지 산악스키로 올라 몽블랑 산군의 남사면을 타고 이태리의 산악도시 꾸르마이어 방향으로 1300고지의 앙뜨레브까지 내려간 다음, 다시 헬브로너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마지막으로 발레브랑쉬를 타고 내려 샤모니(1000미터)까지 내려오는 여정이다.

일찍 서둘다 보니 에귀디미디 행 첫 케이블카를 놓치지 않아 기분이 좋다.
일요일이라 봄 스킹을 즐기는 스키어들 외엔 없는 듯 케이블카엔 스키어들만이 왁자지껄하다.
3800고지의 에귀디미디는 여전히 춥다. 방한모를 두개나 눌러쓰고 설능을 내려가 부츠를 조이고 스키를 착용, 내리 달린다. 드넓은 설원을 달려 약 3000고지까지 내려온다. 예년에 비해 뚜어 롱데 북벽 아래의 크레바스 지대가 한층 많이 벌어져 헬브로너 쪽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훨씬 아래까지 내려가 올라야 하기에 그만큼 더 더디다. 산악스키에 실을 달고 한 시간 이상을 걸어 오르니 3500고지의 찬바람에도 땀이 흐를 지경이다.

이제부터 이태리 땅이다.
이태리 스키어들과 함께 철 난간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모두들 난간 끄트머리에서 조심스럽게 스키를 착용해야 하기에 지체가 되어 남는 시간을 이용해 스키에 붙였던 실을 떼어내는데, 그만 부주의로 스키폴 하나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낭패다. 처음 가보는 빙하스키에 폴을 하나만 들고 탄다는 게 왠지 불안하다. 그렇다고 하여 만일을 위해 가져온 피켈을 폴 대신 들고 스키를 탈 수도 없지 않냐. 발 돋음을 하여 아래를 유심히 살피니 잘만하면 폴을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차례가 되어 난간 끝에서 조심스럽게 스키를 착용하고 하나의 폴만으로 가파른 모글 지대를 타고 내려 폴이 떨어진 지점으로 접근한다. 스키를 착용한 채 최대한 킥 스텝으로 오른다. 하지만 약 사오 미터 바위지대가 가로막고 있다. 할 수 없이 눈에 얼어붙은 돌을 뜯어 몇 번이나 던진다. 삼세번이 아닌 그의 세배 정도 더 던진 후에야 돌에 맞은 폴은 아래로 흘러내린다. 안도감이 몰려 온다.

이제 양손에 폴을 쥐었으니 든든히 달리는 일만 남았겠다.
꾸르마이어 쪽으로 흐르는 드넓은 빙하 지대를 다 밟을 수야 없기에 가장 왼편으로 달려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크레바스가 적어 안심이 되지만 고도가 높은데도 남향이라 설질이 좋지 않다. 한낮의 열기에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여 울퉁불퉁 요지경이다. 한참을 열심히 타고 내리니 헬브로너로 오르는 중간 케이블카역(2174미터)인 몽 프레티가 나타난다. 휴게실도 있고 하여 많은 스키어들이 쉬고 있다. 아직 12시 전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 쉬지 않고 내려가기로 마음먹고 한 스키어에게 내리막길을 물으니 좌우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한다. 이번에도 좌측을 택해 내려간다. 2000미터 아래쪽 사면의 설질은 완전히 젖어 있다. 이제 나무들 사이를 가로 질러야 한다. 다른 스키어들은 보이지 않는다. 경치 좋은 알파인 지대를 놓아두고 점심 전에 마을로 내려갈 스키어들은 드물 것이다. 오히려 호젓하게 산길을 타고 내린다. 마을 가까이 다가가자 한두 군데에서 일이 미터 흙 길이 드러나 있지만 스키를 신은 채 걸어 건너 끝까지 스키를 타고 내리니 케이블카 역이 있는 라 파루드에 닿는다.
곧장 헬브로너 행 케이블카 표를 끊고서 차례를 기다리며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마신다. 좋다. 시원한 봄바람을 쐬며 몽블랑 남동면을 바라본다. 오래 전에 그곳을 오르던 추억이 새롭다. 그것도 잠시, 이내 케이블카가 도착해 곧바로 오르기로 한다. 세 번이나 케이블카(10인 승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케이블카)를 갈아타고서 3500고지의 헬브로너에 이르니 바람이 차다. 오후 1시가 다되어 배에서 신호가 온다. 준비해간 점심을 보다 높은 고도에서 몽블랑 동벽을 조망하며 맛있게 먹기로 하고서 따뜻한 봄기운이 있던 라 파루드에서 먹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정도다. 전망대에서 바람이 가장 적은 쪽에 쪼그려 않아 몇 조각 빵을 먹지만 추워 목이 매여 곧장 짐을 꾸린다. 발레브랑쉬 설원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적어도 1000미터 고도만 더 내려가도 따뜻할 것이라 여기고서 스키를 신고 타고 내린다.

에귀디미디에서 타고 내린 길과 만나기 전까진 어느 누구의 흔적도 없는 설사면이다.
못다 먹은 점심 생각도 잊은 채 하얀 설사면에 나만의 흔적을 그으며 내리 달린다. 한참을 타고 내려 흐믓하게 뒤를 돌아본다. 북향이라 분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턴이 잘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에귀디미디에서 타고 내린 길과 만난다.
이제부터 대로에 접어든 셈이다. 많은 스키어들과 마주친다. 조금 전의 흥미는 느낄 수 없고 그저 타고 내릴 뿐이다. 하여 속도의 재미라도 느끼기 위해 가속을 붙인다.

르뀅 산장 어귀의 크레바스 지대를 벗어나 렛쇼 빙하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니 덥다. 하여 배낭을 벗어 못다한 점심을 먹는다. 햇살을 등지고 드류와 에귀 베르뜨를 향해 서서 먹는다. 엉덩이에 뿔(?)은 나지 않았지만 찬 눈밭에 앉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하여 사진은 재미가 없어 아예 배낭에 사진기 둘을 집어 넣어 버린다.

이제 샤모니까지 내리 달리기만 하면 된다. 마치 봅슬레이 슬로프처럼 움푹 패인 회전 지점들이 즐비한 몽땅베르 아래의 숲길도 이제 많이 녹아 몇 군데에선 흙이 드러나 있지만 아직 충분히 샤모니까지 슬로프가 연결되어 무사히 뻬레랑 스키장의 버스 정류장까지 스키로 닿으니 시간은 오후 4시가 다되어 간다. 무려 여덟 시간을 쉼 없이 움직였지만 ‘더 달리고 싶다. 슬로프만 이어다오!’라는 게 모든 열성 스키어들의 바람일 것이다.

한 스키장에서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것보단 이렇게 넓게 멀리 다니는 one way sking이 지루해져 가는 나의 스키장 스킹에 새로운 재미를 붙여준다거나 할까.

물론 이틀 전에도 꼴뒤빠송(3050미터)이라는 고개까지 산악스키로 올라 르 뚜르(1200미터)까지 스킹다운을 했는데, 바야흐로 이제 산악 스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 온 셈이다.

자료출처:http://www.goalps.com